집에서 도토리묵 만들어 먹기
시애틀 사는 친구가 남부 지역을 거쳐오면서 만난 노스 캐롤라이나 산, 도토리. 가져가면 묵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도토리 나무 밑에 수북히 떨어져 있어서 주워담기만 하면 되었다고 흥분하며 건네준 도토리. 알이 꽉차고 반들거리는 모습이 반갑고 신기했다. 친구 부부와 함께 인터넷을 뒤져서 묵을 만들기로 했다.
도토리 세척
우선, 소금물에 하룻밤 담가서 벌레 먹은 도토리를 골라내라고 했지만, 물 위에 떠 오른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도토리 말리기
이제부터는 말리기 시작.
도토리를 말리는 도중에 예상치 않은 사고가 생겼다.
우리 집 근처에서는 볼수 없는 참 도토리를 발견한 다람쥐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 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발자국 소리만 나도 도망치는 녀석들이 도토리 앞에서는 사생결단이었다.
할수 없이 도토리를 집안에 들여 놓았다가 야채 건조기로 말려야만했다. 건조기 안에서 시간이 초과되는 바람에 까맣게 변색된 도토리들이 제법 있었다. 가슴이 탔지만, 다행히 물에 불리는 동안에 많이 탈색이 되었다.
도토리 손질법
유투브에서 말하길, 도토리를 자루에 담아서 차 바퀴로 몇 번 밀어주면 껍질을 쉽게 깔 수 있다길래 차밑에 넣고 전진, 후진을 해보았다.
맙소사!
자루가 터지면서 비탈진 주차장 아래로 도토리가 굴러 나갔다. 그것들을 주워 담아 놓고, 자루에 남은 도토리를 들여다 보니 너무 잘게 부서져 있었다. 덕분에 껍질을 벗기는데 애를 먹었다.
할수 없이 이렇게 두드려 깼다. 손목과 팔꿈치가 욱신거리도록…
탄닌도 빼고 또 믹서에 갈기 위해 물에 담가 하룻밤을 또 지냈다. 불리는 동안에 검은 물이 나오면 물을 갈아주었다.
물에 좀더 불려야한다는 주장이 들려왔지만, 친구랑 나는 고집스레 밀고 나가 믹서에 갈기 시작했다. 덜 불었다는 아우성이 믹서에서 들려왔다.결국 나이 많은 믹서는 도토리 갈기를 마지막 미션으로 수행하고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도토리앙금(녹말) 만들기
간 도토리를 베보자기에 넣고 물을 부어가며 짜냈다.
병에 담아서 도토리 전분을 가라 앉히는 중. 가라앉으면 윗물을 조심스레 따라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주면서 탄닌을 빼주었다. 이틀을 우려내야한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지만, 날씨가 훈훈해서 상할까봐 염려한 나머지 하루만 기다리기로.
드디어 가라앉은 전분에 3배 정도의 물을 붓고 묵을 쑤기 시작했다. 이게 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엉기기 시작하면 손목이 아프도록 저어야했다.
도토리묵 만들기 성공!
그리고….우리 손에서 태어난 순도 백퍼센트의 탱글탱글한 묵!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미국에서 묵을 만들다니. 한국에서도 생각조차 못해본 일이었다. 묵을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수고스럽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처제들한테도 자랑삼아 나눠주었더니, 각자 방식으로 양념을 해서 잘 먹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집 식탁에 올라온 묵무침!
막내 처제 솜씨
셋째 처제 솜씨.
묵 마니아는 양념을 간단하게 한다고.
가을이 깊어지는 골목에 단풍이 날마다 색을 달리한다. 모처럼 찾아 온 시애틀 친구 부부와 함께한 전통체험, ㅎㅎㅎ 도토리묵 만들어 먹기로 이 가을이 더욱 의미있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