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맥헨리 (Fort McHenry), 미국 국가의 탄생지를 방문하다

메릴랜드 볼티모어 시에 자리한 포트 맥헨리(Fort McHenry)는 미국 국가인 “Star-Spangled Banner”의 탄생지입니다.

그 감동적인 가사는 1812년 전쟁 중 영국 해군의 격렬한 포격 이후, 요새 위에 도전적으로 휘날리는 성조기에서 영감을 받아 Francis Scott Key가 쓴 것입니다. 곡은 영국의 작곡가인 John Stafford Smith 가 만들었습니다.

1절 가사입니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른 새벽 여명 사이로 어제 황혼의 미광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했던,넓은 줄무늬와 밝은 별들이 새겨진 저 깃발이, 그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우리가 사수한 성벽 위에서 당당히 나부끼고 있는 것이. 로켓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이 밤새 우리의 깃발이 그곳에 서있었음을 증거하였으니, 오 말해주오, 그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의 땅과 용자들의 고향에서!

Fort McHenry 방문 정보

주소: 2400 East Fort Avenue
Baltimore, MD 21230

입장권: $15(16세 이상)
Free(15세 이하)

관람시간: 7일 오픈(새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에 클로즈)
7am-6pm (5/15-9/30)
9am-5pm (10/1-5/14)

무료 주차장 :건물 앞에 위치

무료 가이드 투어와 피크닉 장소가 있습니다.

포트 맥헨리의 지명은 James McHenry 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인 그는 볼티모어에 정착했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 휘하에서 전시 장관을 지내는 동안 대규모 상비군을 창설했으며, 후에 영국군이 볼티모어를 침공했을 때 그의 아들과 함께 자원 봉사자로 맥헨리의 치열한 방어 전선에 참여했습니다.

포트 맥헨리 - 볼티모어 이너 하버

볼티모어시, 이너 하버를 바라보는 장소입니다.

1803년에 완공된 후 맥헨리 요새는 짧은 기간 동안 평화를 누렸으며, 이 요새는 미국의 소규모 상비군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고 미국 최초의 경포병 부대가 그곳에서 조직되었습니다. 1812년 6월 18일 미국은 “자유 무역과 선원의 권리”를 둘러싼 여러 분쟁 이후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1813년 영국군이 체서피크 만에 진입하여 이 지역에서 공격 작전을 시작하면서 맥헨리 요새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1814년 8월, 블레덴스버그에서 굴욕을 당하고 영국군이 워싱턴 D.C.를 점령하고 불태웠을 때 미군이 재난에 휩싸였습니다.

영국군 함선 19척이 진입했던 체서피크 만. 이곳은 볼티모어 항구의 입구입니다. 물길을 따라 트레일이 있습니다.
자원한 시민들이 군인들과 함께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던 장소

국가의 수도가 함락되자 영국군의 다음 타겟은 항구 도시인 볼티모어로 향했습니다. 1814년 9월 5,000명의 영국군이 볼티모어 시 북동쪽 뉴포트에 상륙하였지만 시민들에 의해 흙으로 급조된 참호 진지를 뚫지 못했습니다.

영국 해군은 육군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볼티모어 항구로 들어와야 했는데, 그 길을 가로막는 맥헨리 요새와 1,000명의 수비군이 있었습니다. 1814년 9월 13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국 해군이 폭탄과 로켓을 적재한 함선 19척을 보내어 요새에 있는 방어군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자유 흑인노예와 노동자를 포함하여 연령,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볼티모어 모든 시민이 자원하여 도시 방어에 기여했습니다.

영국군 함선의 모형

25시간 동안 맥헨리 요새에는 폭탄과 로켓이 쏟아졌지만, 9월 14일 아침 연기와 안개가 걷혔을 때에도 방어군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영국 육해군은 철수했고 도시를 점령할 수 없었습니다. Francis Scott Key라는 이름의 변호사는 폭격을 목격하고 영감을 받아 “The Defense of Fort McHenry”라는 시를 썼으며 나중에 음악이 추가되고 “The Star-Spangled Banner”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당시에 휘날렸던 성조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워싱턴 디씨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미국 역사 박물관 입니다.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in Washington, D.C.)

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있는 성조기는 크기가 9.1 x 12.8m (30 x 42 ft) 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아랫쪽 상당 부분이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잘려나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한 의미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여기에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볼티모어 인근에 살고 있는 저는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새삼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지켜낸 이 도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지요. 볼티모어 교향악단, 아름다운 항만, 존스 합킨스 대학, 시인 애드가 앨런 포우를 배출한 ,그리고 유명한 크랩 케익…등과 더불어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이 도시의 저력을 맥헨리 요새에서 마주쳤습니다.

Prisca

미국 동부 메릴랜드에 거주. 글쓰기와 영화, 중국 무협 드라마 보기가 취미입니다.

2 Comments

    1.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 가까이 살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으려니 하니까요.
      제게는 성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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