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화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김득신은 누구인가요?

조선 시대 후기의 화가인 김득신(1754년-1822년) 은 개성 김씨 집안에서 태어나 영조와 순조 시대에 걸쳐 활약했던 궁중 도화서 화원 출신의 화가입니다. 그는 정조세자책봉의궤도, 정조초상, 원행을묘정리의궤도. 순조원후가례반차도 등의 제작에 참여했으며, 또한 자연과 풍속화를 잘 그렸는데, 김홍도 풍의 풍속화에 산수화의 특징을 배경으로 써서 자신 만의 고유한 화풍을 끌어낸 화가였습니다.

그는 산수화, 인물화, 동물화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남겼는데, 특히 민초들의 심성과 삶의 해학을 실어낸 그의 풍속화에는 남다른 재능이 나타납니다.

긍재(兢齋) 김득신은, 현재(玄齋) 심사정,  겸재(謙齋) 정선과 함께 영조 때의 삼재(三齋)로 불렸다고 합니다. 또한 동생인 김석신, 양신을 비롯하여 세 아들이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명문 화원 집안이었습니다.

김득신의 대표작

풍속화첩(간송미술관 소장), 풍속도 8폭 병풍(호암미술관 소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한국미술 5천년 조선왕조 회화편에 수록된 김득신 화첩 속의 야압도, 풍속화첩 속의 천렵도, 농촌풍일, 묘박계추도(파적도)등의 친근한 풍속도를 소개합니다..

야압도는 사생화로서, 그림의 왼쪽에는 바위 틈새에 나무의 줄기, 가지, 잎 등을 표현하는 데에서 수지법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당시의 화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화풍은 단원 김홍도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이런 이유로 화가 김득신이 단원 김홍도의 영향을 받았다고 다소 과소평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림의 오른 쪽에는 자하(紫霞) 신위가 쓴 칠언시가 보입니다. 시 속에 야압(들오리)이라는 시귀가 들어 있어서 야압도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헤엄치는 오리라는 뜻의 유압도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중국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던 신위는, 김득신이 그린 이 그림을 보고 동정호 남쪽을 흐르는 소수와 상강이 만나는 절경, 소상을 떠올렸지요. 그곳에 두고 온 잊지 못할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움을 표현한 듯한 시입니다.

畵裏瀟湘自要秋(화리소상자요추)

그림 속 소상 물가에는 어느덧 깊은 가을이 찾아왔네

詩家野鴨漫多愁(시가야압만다수)

들오리를 바라보며 시인은 하염없이 시름에 잠긴다

試看翠減紅消處(시간취감홍소처)

푸르름은 사라지고 붉은색마저 스러져 간 그곳에서

好趂江清月冷舟(호진강청월랭주)

차가운 달빛 머금은 맑은 강물 위의 배처럼 그렇게 유유히 떠가는구나

신위는 누구인가요?

신위(1769년-1845년)의 호는 자하(紫霞)이며 영조와 헌종 시대의 인물로, 문신이며 화가이고 서예가로 시, 서, 화 삼절로 일컬어졌습니다.

순조 시대에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간 일을 계기로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섭렵하고 중국의 학자, 문인과의 교유를 돈독히 하였는데, 그는 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병조참판을 역임할 때까지 당쟁의 여파로 파직, 복직, 유배와 같은 고초를 여러 번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림으로는 산수화와 묵죽에 능했고 글씨는 동기창 체를 따랐으며, 시에 있어서는 한국적인 특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고 합니다.

천렵도
천렵도(A Scene of Anglers)
간송미술관 소장

천렵도

천렵도는 여름 철에 강이나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탕을 끓이거나 구워 먹던 피서법을 그린 사실적인 풍속화입니다. 바람은 소소하게 불어와 버드 나뭇가지를 흔들고, 풀 줄기도 바람에 따라 살짝 누워있습니다. 모처럼 고된 일에서 벗어난 농부들은 한가롭고 편하게 모여앉아 잡아온 물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각기 다른 곳을 향해 있습니다. 몸은 한가롭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낚싯대에 몰려와 앉아 기다리고 있는 왜가리(?)들도 사냥의 수고 없이 한 끼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림은 대각선으로 양분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대각선 아래에 모여있습니다. 획일적인 대각선 구도의 일탈은 낚싯대와 그 위에 앉아있는 새들입니다.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우고 있는 새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각각 다른 것도 흥미롭습니다.

또 하나는 나무 뒤에 서있는 소년의 전혀 다른 시각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음식이 아니라 나무 아래에 무심히 앉아있는 어른입니다. 소년의 각도 다른 시각이 생동감과 긴장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마치 일감 때문에 아버지를 재촉하러 온 아들 같네요. 화가 김득신이 즐겨 쓰는 구도로, 안정감과 스토리를 통한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농촌풍일
농촌풍일(A Day at a Farming Village)
개인소장

농촌풍일

농촌풍일에서 김득신은 홍월헌이라는 호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볼 때, 30대에 그린 그림으로 보입니다. 그 후에 김득신은 긍재라는 호를 즐겨 썼지요. 여기에서도 그의 대각선 구도가 나타납니다. 오른쪽 바위 위에서부터 시작해 강아지가 걸어가는 길 끝에 가닿는 선이지요.

대각선 안에는 커다란 소가 순한 눈을 뜨고 참을 내오는 부인과 아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주는 따스한 오브제입니다. 일군들은 음식 내오는 모습을 보자 싱글거리면서도 못 본 척 능청스럽게 엎드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부인의 발걸음이 좀 더 빨랐으면 좋겠네요.

묘박계추도
묘박계추도(파적도)- Robbor Cat and Mother Hen
간송미술관 소장

묘박계추도

묘박계추도는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도망치다.”라는 뜻입니다. 묘박계추도라는 제목과 함께 고양이 사건으로 인해 “고요함을 깨뜨리다.”라는 뜻의 파적도라는 두 개의 제목이 붙기도 한 작품입니다. 주인 남자는 생계를 위해 돗자리를 짜던 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가난한 양반 집안에 고양이가 나타나 귀한 재산인 병아리를 물고 도망칩니다. 고양이는 꼬리를 세우고 달아납니다. 붙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주인은 곰방대를 들고 고양이를 잡으려다가 돗자리 짜는 도구를 발로 차면서 머리에 쓰고 있던 사방건과 함께 마당으로 떨어집니다. 부인은 소리를 듣고 맨발로 황급히 뛰어나왔지만 곧 이들은 마당에서 같이 엎어질 판입니다.

집주인 부부는 병아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이미 늦어 보입니다. 이제 희망은 어미 닭에게 있습니다. 다른 병아리들도 각 방향으로 도망가지만 어미 닭은 온 힘을 당해 고양이를 향해 날아갑니다. 이들의 동선은 그만큼 사실적이고 생동적입니다.

모든 시선은 뒤돌아보며 달려가는 고양이를 향하고, 고양이를 중심으로 아래 위쪽 대각선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모르게 신나게 달려가는 고양이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반면에 마당에 서있는 나무는 난리가 난 이들을 향해 무심히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지요.

“화가 김득신의 작품에서는 궁중의 도화서 화원이면서도 민중의 생활이나 감정을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해 내는 서정성이 돋보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사대부들의 계급적 문화 차이를 강조하는 남종화 취향으로 보수성이 강한 형식주의에 치우쳐 있을 때였습니다. 비록 그가 경직된 세도 정국 속에서 형식화에 기울었더라도 김홍도가 이룬 풍속도의 성과를 가장 충실히 전수하여 그 형식미의 수준을 19세기 화단에 물려준 역할은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이태호(명지대 교수)

Prisca

미국 동부 메릴랜드에 거주. 글쓰기와 영화, 중국 무협 드라마 보기가 취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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