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등, 포대기 문화
1960년, 한국에 온 미국인의 눈에는 포대기를 사용하여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게 보인 듯합니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때 유모차를 사용하던 당시의 미국 문화였기 때문이겠지요.
요즘은 아기띠나 힙시트를 사용하고, 또한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조깅을 할 수 있을 만큼 편리하게 육아 방식이 바뀌었지만, 아기와의 체온을 공유하는 포대기가 사라져 가는 지금, 아쉬운 것은 업고 있는 동안에 일어나는 “정”이라는 그리운 단어입니다.
그 시절,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자란 기억은 사라졌어도, 끈끈한 정은 그대로 남아서 우리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며, 두레반에 어깨를 비벼대고 둘러앉아 냄비 속의 찌개를 같이 떠먹고, 네 것과 내 것이 구별이 잘 안되던 시절이었지요.
등에 업힐 경우 체온의 따스함으로 아이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자녀가 많은 집에서는 언니나 형, 또는 누나가 동생을 업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동력이 부족하던 그 시절에 포대기의 역할은 중요했어요.
모내기 철이 되면, 남자들은 모판에서 모를 뽑아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여인네들은 들밥을 해서 날라야 합니다.
새참 두 번에 점심까지 합해 모두 하루 세 번을 불을 때서 밥을 짓고 국수를 삶아내야만 했지요. 아마도 아기는 포대기 속에 담겨서 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물에 축인 지푸라기에 기와 가루를 묻혀서 놋그릇을 닦습니다. 제사가 다가와 제기를 닦는 것일지도.
아기 엄마의 호피 무늬 얇은 고리땡(코르듀이) 저고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쪼그리고 앉은 엄마도 힘들지만 다리를 뻗지 못하는 포대기 속의 아기도 힘이 듭니다.
아기는 이제 포대기 없이도 업힐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걸을 수도 있지만 할머니 등에 업혀 어디든 따라다닙니다.
아버지나 삼촌 등에 업히는 일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사는 집안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던 시절이었지요. 아버지는 어색해도 아이는 행복합니다.
지금은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다니는 일이 촌스럽고 불편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한국의 포대기 육아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포대기를 사용하는 애착 육아법이 떠오르는 요즘의 대세라고 하네요. The Podaegi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한국의 포대기가 아기의 정서 안정과 부모와의 친밀감을 높이는 우수한 육아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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